『까만 크레파스』가 들려주는 함께 빛나는 힘

 

그림책 심리학 시리즈 24

『까만 크레파스』가 들려주는 함께 빛나는 힘

모든 색에는 저마다의 자리와 역할이 있습니다

“나는 별로 쓸모없는 사람인 것 같아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나 존재가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느낄 때 쉽게 작아집니다.

다른 사람은 눈에 띄는 재능을 가진 것 같은데 나만 잘하는 것이 없는 것 같고, 내가 없어도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을 것 같은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특히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내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중요한 역할에서 제외되면, 단순한 서운함을 넘어 자신의 가치까지 의심하게 됩니다.

“나는 왜 저 사람들처럼 잘하지 못할까?”

“내가 가진 것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걸까?”

“나도 저들과 함께할 수 있을까?”

나카야 미와의 그림책 『까만 크레파스』는 이런 마음을 색색의 크레파스 이야기로 따뜻하고 유쾌하게 풀어냅니다.

이 책은 모든 사람이 눈에 띄는 색이 되어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서로 다른 색과 능력이 연결될 때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새로운 그림이 탄생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새 크레파스들이 발견한 하얀 도화지

새 크레파스들은 상자 안에 나란히 누워 지내는 것이 심심합니다.

그러던 어느 날 노랑이가 상자 밖으로 나왔다가 커다란 하얀 도화지를 발견합니다. 신이 난 노랑이는 도화지 위에 나비를 그립니다.

나비에게 꽃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빨강이와 분홍이를 부릅니다. 두 크레파스는 아름다운 꽃을 그립니다. 꽃에는 잎이 필요하다며 초록이와 연두도 함께하고, 나무와 땅, 하늘과 구름을 그릴 크레파스들도 차례로 모입니다.

크레파스들은 저마다의 색으로 그림을 채워 갑니다.

까망이도 친구들과 함께 그림을 그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다른 크레파스들은 이미 그림이 충분히 아름답다며 까망이의 참여를 막습니다.

까만색을 칠하면 모처럼 그린 그림이 어두워지고 망가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까망이는 속상합니다.

자신도 똑같은 크레파스인데 친구들은 왜 자신만 필요하지 않다고 말하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림이 엉망이 된 이유

처음에는 서로 필요한 색을 불러가며 그림을 완성하던 크레파스들이 점차 욕심을 내기 시작합니다.

자기 색을 더 많이 칠하고 싶고, 자신의 그림이 더 눈에 띄기를 바랍니다. 다른 색이 그린 자리를 침범하면서 크레파스들은 서로 다투기 시작합니다.

“내 그림 위에 왜 칠하는 거야?”

“내가 그린 것이 더 중요해!”

저마다 자기 색만 돋보이게 하려다 보니 아름답던 그림은 엉망이 됩니다.

이때 샤프펜슬이 외톨이가 된 까망이에게 한 가지 방법을 알려 줍니다. 까망이는 뒤엉킨 그림 위를 온통 까맣게 칠합니다.

다른 크레파스들은 깜짝 놀랍니다. 그림이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샤프펜슬이 뾰족한 끝으로 까만 표면을 긁기 시작하자 그 아래 숨어 있던 여러 색이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캄캄한 밤하늘 위로 화려한 불꽃이 피어납니다.

까망이의 검은색과 샤프펜슬의 뾰족한 끝, 그리고 친구들이 먼저 칠해 놓은 수많은 색이 함께 어우러져 멋진 불꽃놀이 그림이 완성된 것입니다.

그림은 어느 한 색의 힘만으로 완성되지 않았습니다. 서로 다른 색과 능력이 연결되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한국어판 책 소개, 일본 출판사 공식 시리즈 소개








까망이는 왜 자신이 필요 없다고 느꼈을까요?

까망이를 가장 아프게 한 것은 그림을 그리지 못한 사실만이 아닙니다.

자신만 친구들의 모임에 끼지 못했다는 사실입니다.

사람에게는 다른 사람과 연결되고 어떤 집단에 받아들여지고 싶어 하는 소속의 욕구가 있습니다. 가족이나 학교, 직장, 친구 관계 안에서 자신이 구성원으로 존중받는다는 느낌은 심리적 안정감을 줍니다.

반대로 반복해서 제외되거나 의견을 무시당하면 이렇게 생각하기 쉽습니다.

“나는 중요하지 않은가 봐.”

“사람들은 나를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아.”

“내가 가진 것은 가치가 없어.”

이러한 생각이 오래 지속되면 자신감을 잃고 새로운 관계나 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두려워질 수 있습니다.

까망이가 외톨이가 된 것은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친구들이 까망이의 색이 어떤 그림을 만들 수 있는지 아직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사람에게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함께 그리던 친구들은 왜 싸우게 되었을까요?

크레파스들은 처음에 서로 필요한 색을 불러 주며 멋진 그림을 완성합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 함께 그림을 그린다는 목적보다 자기 색을 더 많이 보여 주는 일이 중요해집니다. 협력하던 관계가 경쟁하는 관계로 바뀐 것입니다.

사람이 함께 일할 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납니다.

자신의 의견만 옳다고 주장하고, 공로를 혼자 인정받으려 하거나 다른 사람의 영역을 존중하지 않으면 공동의 목표는 사라집니다. 각자의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관계가 무너지면 좋은 결과를 만들기 어렵습니다.

협력은 단순히 여러 사람이 같은 장소에 모여 일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고, 다른 사람의 능력이 나의 능력과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며, 공동의 목표를 향해 조율하는 과정입니다.

『까만 크레파스』 속 아름다운 불꽃놀이는 모든 색이 똑같아졌기 때문에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색이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완성될 수 있었습니다.


다양성은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종종 팀워크를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는 것”이라고 오해합니다.

그러나 건강한 공동체는 모두가 같은 색을 가진 곳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생각과 기질, 강점을 지닌 사람들이 안전하게 자신의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곳입니다.

누군가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잘 냅니다.
누군가는 계획을 구체적으로 정리합니다.
누군가는 사람들의 의견을 조율합니다.
누군가는 실수를 꼼꼼히 확인합니다.
누군가는 말없이 끝까지 자리를 지킵니다.

눈에 잘 띄는 역할도 있고, 결과 뒤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는 역할도 있습니다.

샤프펜슬과 까망이가 없었다면 엉망이 된 그림은 불꽃놀이로 다시 태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반대로 까망이와 샤프펜슬만 있었다면 긁어 낸 선 사이로 아름다운 색이 나타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역할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자신의 가치가 보이지 않을 때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능력은 크게 보고, 매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강점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을 보며 부러워하지만 자신이 다른 사람의 말을 끝까지 들어 주는 능력은 알아보지 못합니다. 일을 빠르게 처리하는 사람과 비교하면서 자신이 실수를 줄이기 위해 꼼꼼히 확인하는 장점은 인정하지 않습니다.

조용한 사람은 자신의 강점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공동체를 지탱하는 힘은 언제나 크고 화려한 행동으로만 나타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 주는 일,
약속을 지키는 일,
갈등 속에서 한 번 더 생각하는 일,
힘든 사람 곁에 조용히 머무는 일도
관계를 지켜 주는 중요한 힘입니다.

아직 내 강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해서 강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어쩌면 그것을 알아볼 상황과 기회를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나의 색을 발견하는 네 가지 방법

1. 내가 자연스럽게 하는 일을 살펴보기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부탁하는 일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세요.

이야기 들어 주기, 자료 정리하기, 사람들을 편안하게 만들기처럼 내가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던 행동 속에 강점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2. 결과보다 과정에서 드러난 힘을 찾기

성공한 일만 강점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끈기, 도움을 요청한 용기, 실패한 뒤 다시 시작한 회복력도 중요한 강점입니다.

3. 다른 사람의 색을 구체적으로 인정하기

“잘했어”라는 말보다 “네가 끝까지 이야기를 들어 줘서 마음이 편안했어”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해 보세요.

서로의 역할을 정확히 알아봐 주는 말은 소속감과 자신감을 키워 줍니다.

4. 나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보기

어떤 색도 모든 그림에 똑같이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지금 있는 곳에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고 해서 어디에서도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자신의 기질과 능력이 잘 드러날 수 있는 관계와 환경을 찾는 일도 중요합니다.


함께 해 보면 좋은 그림책 활동

‘우리의 불꽃놀이’ 그리기

도화지에 여러 가지 밝은색 크레파스로 자유롭게 색을 칠합니다. 빈틈이 보이지 않도록 그 위를 까만 크레파스로 덮은 다음, 안전한 도구를 사용해 까만 면을 긁어 불꽃을 표현합니다.

완성된 그림을 보며 다음 질문을 나누어 보세요.

  • 검은색으로 덮었을 때 어떤 마음이 들었나요?
  • 까만색 아래에 여러 색이 숨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나요?
  • 샤프펜슬과 까망이는 각각 어떤 역할을 했나요?
  • 밝은색 크레파스가 없었다면 불꽃은 어떻게 보였을까요?
  • 우리 가족이나 모임에서 나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나요?
  •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색은 무엇일까요?

어린아이와 활동할 때는 날카로운 샤프펜슬 대신 나무 막대나 끝이 뭉툭한 스크래치 도구를 사용하고, 보호자가 곁에서 안전을 살펴야 합니다.


그림책을 읽고 나누면 좋은 질문

  • 친구들이 까망이를 빼놓았을 때 까망이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 다른 크레파스들은 왜 까망이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을까요?
  • 처음에는 잘 그리던 크레파스들이 왜 다투기 시작했을까요?
  • 샤프펜슬은 까망이의 어떤 가능성을 발견했을까요?
  • 불꽃놀이 그림은 누구의 작품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친구가 모임에서 혼자 남아 있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요?
  • 우리 반이나 가족에게 꼭 필요한 역할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 나와 다른 사람의 색이 만나면 어떤 그림을 만들 수 있을까요?

질문에 정답을 요구하기보다 아이가 등장인물의 감정을 상상하고 자유롭게 말하도록 기다려 주세요.


소외된 사람에게 능력을 증명하라고 해서는 안 됩니다

『까만 크레파스』를 읽으며 한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까망이는 불꽃놀이를 완성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면서 친구들에게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이것을 “쓸모를 증명해야만 공동체에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의 가치는 얼마나 유능한지, 얼마나 많은 성과를 냈는지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까망이는 그림을 구해 내기 전에도 친구들과 동등하게 존중받아야 할 존재였습니다. 공동체에 속할 권리는 특별한 능력을 보여 준 대가로 주어지는 상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반복해서 따돌림당하고 있다면 그 사람에게 더 잘하거나 적극적으로 행동하라고 요구하기 전에, 배제하는 환경과 관계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함께 빛나는 공동체는 유용한 사람만 받아들이는 곳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존중하면서 각자의 가능성을 발견할 기회를 주는 곳입니다.


모든 색이 함께 만든 불꽃놀이

『까만 크레파스』는 가장 눈에 띄는 색이 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혼자 모든 것을 해내야 한다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까망이에게는 검은색이 있었고, 샤프펜슬에게는 긁어서 선을 만들어 내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다른 크레파스들에게는 까만색 아래에서 다시 빛날 수 있는 아름다운 색이 있었습니다.

어느 하나만으로는 불꽃놀이가 완성되지 않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앞에서 이끌고,
누군가는 뒤에서 지지하며,
누군가는 새로운 생각을 보태고,
누군가는 갈등을 조율합니다.

중요한 것은 가장 화려한 색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색을 지우지 않으면서 하나의 그림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지금 자신의 색이 눈에 띄지 않는다고 느껴진다면 너무 빨리 가치가 없다고 판단하지 마세요.

아직 나의 색이 필요한 장면을 만나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또는 너무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어서 그 소중함을 알아보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오늘 자신에게 조용히 물어보세요.

“나는 어떤 색으로 이 세상에 따뜻함을 더하고 있을까?”

그리고 가까운 사람에게도 말해 주세요.

“당신의 색이 있어서 우리의 그림이 더 아름다워졌어요.”

서로 다른 색이 함께할 때 우리의 삶에도 환한 불꽃이 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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