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심리학 시리즈


『적(The Enemy)』이 보여 주는 적대감의 심리학

우리는 어떻게 누군가를 ‘적’으로 만들게 될까요?

“그 사람은 원래 이기적이야.”

“저쪽 사람들은 우리와 달라.”

“저 사람의 말은 들을 필요도 없어.”

갈등이 시작되면 우리는 상대방을 한 사람으로 보기보다 ‘나쁜 사람’, ‘문제 있는 사람’, ‘우리와 다른 사람’이라는 이름으로 바라보기 쉽습니다.

상대방의 행동에는 나쁜 의도가 있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행동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설명합니다. 상대방도 두려움과 상처, 지키고 싶은 것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은 점점 보이지 않게 됩니다.

이러한 인식이 극단적으로 커지면 상대는 더 이상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반드시 이겨야 할 ‘적’이 됩니다.

다비드 칼리가 글을 쓰고 세르주 블로크가 그림을 그린 『적』은 마주 보는 두 개의 참호에서 시작합니다.

한쪽 참호에는 한 병사가 있고, 건너편 참호에는 그가 죽여야 한다고 배운 적이 있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제대로 본 적이 없지만 각자 상대가 잔인한 괴물이라고 믿습니다.

그들은 정말 서로 다른 존재일까요? 전쟁을 계속하게 만드는 진짜 힘은 무엇일까요?






두 개의 참호와 두 명의 병사

넓고 황량한 전쟁터에 두 개의 참호가 있습니다.

한 참호에는 병사 한 명이 숨어 있고, 건너편 참호에는 적군 병사 한 명이 있습니다. 병사는 아침마다 총을 한 발 쏘며 적의 움직임을 살핍니다.

그는 배가 고프고 외롭습니다. 비가 내리면 몸을 피할 곳도 마땅하지 않습니다. 불을 피우고 싶지만 적에게 자신의 위치를 들킬까 봐 참아야 합니다.

병사는 전쟁이 시작될 때 총과 함께 전투 지침서를 받았습니다. 그 책에는 적이 잔인하고 무자비하며 인간이 아닌 야수라고 적혀 있습니다. 적을 먼저 죽이지 않으면 자신과 가족이 죽는다고 배웠습니다.

그래서 병사는 전쟁이 왜 끝나지 않는지 알 수 없으면서도 계속 참호를 지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밤이 되자 몰래 참호에서 나와 적의 진지를 향합니다.

그러나 적의 참호에 들어간 병사는 예상하지 못한 것을 발견합니다. 그곳에는 자신과 비슷한 물건들이 있습니다. 가족사진과 생활의 흔적, 그리고 자신이 받은 것과 닮은 전투 지침서도 있습니다.

적 역시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어 하는 한 사람이었습니다.

다비드 칼리와 세르주 블로크의 『적』은 두 병사가 서로를 괴물이라고 믿도록 만들어진 과정을 통해 전쟁과 선전, 적대감의 본질을 질문하는 그림책입니다. 국내에는 안수연 번역으로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습니다.
(도서 정보: 『적』)


적은 처음부터 존재하는 것일까요?

사람 사이에는 실제로 갈등과 이해관계의 충돌이 존재합니다. 누군가 해를 가하거나 권리를 침해한다면 자신을 보호하고 책임을 묻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갈등하는 상대’와 ‘인간이 아닌 적’은 다릅니다.

상대를 적으로 규정하면 그 사람의 복잡한 모습은 사라집니다.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 두려움, 후회와 양심은 보이지 않고 오직 위험하고 나쁜 특성만 남습니다.

“적은 본래 잔인하다.”

“적은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적과 대화하는 것은 약한 행동이다.”

이런 믿음이 만들어지면 상대에게 가하는 폭력도 정당하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적』의 두 병사는 태어날 때부터 서로를 미워한 것이 아닙니다.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는 설명을 반복해서 배우면서 서로를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적은 실제 행동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누군가가 제공한 이야기와 이미지 속에서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우리는 왜 집단을 ‘우리’와 ‘그들’로 나눌까요?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안정감과 정체성을 얻습니다.

가족, 학교, 지역, 종교, 국가, 정치적 성향 등 다양한 집단에 소속되며 ‘나는 누구인가’를 이해합니다. 집단에 대한 소속감은 서로 돕고 협력하게 만드는 긍정적인 힘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속감이 강해질수록 다른 집단을 지나치게 단순화할 위험도 있습니다.

우리 집단의 사람은 저마다 다른 성격과 사정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다른 집단의 사람은 모두 비슷하다고 여길 수 있습니다.

“그쪽 사람들은 원래 그래.”

이 한마디 속에서 개인은 사라지고 집단에 대한 고정된 이미지로만 남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러한 경향을 외집단 동질성 편향이라고 설명합니다.

『적』 속 병사에게 건너편 사람은 이름도, 가족도, 사연도 없는 ‘적’일 뿐입니다. 얼굴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지침서가 설명하는 괴물의 이미지를 그대로 믿기 쉽습니다.

직접 알지 못하는 사람일수록 고정관념이 빈자리를 채우기 쉽습니다.


선전은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까요?

전쟁과 극심한 집단 갈등에서는 상대 집단을 위험하고 비인간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메시지가 반복될 수 있습니다. 이를 선전의 한 형태로 볼 수 있습니다.

선전은 복잡한 현실을 단순한 이야기로 바꿉니다.

  • 우리는 선하고 상대는 악하다.
  • 모든 문제는 상대 때문에 생겼다.
  • 상대는 우리를 파괴하려 한다.
  • 상대를 없애야만 안전해진다.
  •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은 우리 편이 아니다.

이런 이야기는 불안한 상황에서 강한 힘을 가집니다. 세상을 선과 악으로 나누면 이해하기 쉽고, 누구를 두려워하고 공격해야 하는지도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적』 속 전투 지침서는 병사에게 생각할 필요가 없는 완성된 답을 줍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제공한 확실한 답이 항상 진실인 것은 아닙니다. 특히 상대의 목소리를 들을 기회가 차단된 상황에서는 한쪽의 설명이 전체 현실처럼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상대를 인간으로 보지 않을 때 생기는 일

상대를 감정과 존엄성을 가진 사람으로 보지 않는 것을 ‘비인간화’라고 합니다.

사람을 벌레나 짐승, 바이러스처럼 표현하거나 개인의 이름 대신 모욕적인 명칭으로 부르는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비인간화가 일어나면 공감과 죄책감이 약해질 수 있습니다. 상대의 고통을 보면서도 자신과 같은 인간이 겪는 일이라고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일상에서도 약한 형태의 비인간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진상”, “문제아”, “꼰대”, “실패자” 같은 말 하나로만 부르면 그 사람의 다양한 모습은 사라집니다. 한 번의 행동이 그 사람 전체가 됩니다.

행동을 비판하는 것과 사람의 존재 전체를 부정하는 것은 다릅니다.

“그 사람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피해를 입었다”는 말은 구체적인 행동과 영향을 설명합니다.

반면 “그 사람은 인간도 아니다”라는 표현은 상대를 대화와 책임의 영역 밖으로 밀어냅니다.

잘못된 행동에는 분명히 책임을 물어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도 사람의 존엄성까지 지우지 않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두려움은 적대감을 키웁니다

병사는 적이 무서워 참호 밖으로 나오지 못합니다.

불을 피우면 위치를 들킬까 봐 추위와 배고픔을 견딥니다. 상대도 자신을 두려워하고 있을 가능성은 생각하지 못합니다.

두려움이 커지면 상대의 행동을 더욱 위협적으로 해석합니다.

상대가 침묵하면 공격을 준비하는 것 같고, 먼저 방어하면 공격의 증거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자신은 두려워서 무기를 들었지만 상대가 무기를 든 것은 본래 공격적이기 때문이라고 판단합니다.

이러한 불신은 악순환을 만듭니다.

  1. 상대가 위험하다고 믿습니다.
  2.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공격적으로 행동합니다.
  3. 상대는 그 행동을 위협으로 받아들입니다.
  4. 상대도 방어하거나 공격합니다.
  5. 처음의 믿음이 사실처럼 강화됩니다.

두려움이 현실적인 위험에서 시작되었더라도 서로의 행동을 최악의 의도로만 해석하면 갈등은 더 커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기도 합니다

한 번 상대를 나쁜 사람이라고 믿으면 그 믿음에 맞는 행동만 눈에 잘 들어옵니다.

상대가 실수하면 “역시 무책임한 사람이야”라고 생각하지만 좋은 행동을 하면 우연이거나 다른 의도가 있다고 해석합니다.

반대로 자신과 가까운 사람의 잘못은 상황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그 사람은 힘든 일이 있어서 그랬을 거야.”

이처럼 기존 믿음과 일치하는 정보는 받아들이고 반대되는 정보는 무시하는 경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합니다.

『적』의 병사도 지침서에서 배운 적의 이미지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직접 상대의 참호에 들어가 생활의 흔적을 발견한 뒤에야 기존의 믿음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상대방에 대한 판단이 너무 확실하게 느껴질 때는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이 판단과 맞지 않는 정보도 살펴보았는가?”








관점이 바뀌면 적의 얼굴이 달라집니다

『적』의 중요한 점은 한 병사의 시선만 따라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건너편 병사도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모두 배가 고프고 춥습니다. 전쟁이 끝나기를 바라며 가족에게 돌아가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상대가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잔인한 존재라고 믿습니다.

관점 바꾸기는 상대의 행동에 무조건 동의하는 일이 아닙니다. 상대가 왜 그렇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이해하기 위해 다른 위치에서 상황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상대는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을까?”

“상대가 지키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상대는 나의 행동을 어떻게 해석하고 있을까?”

이 질문은 갈등의 정답을 즉시 알려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상대를 단순한 악인으로만 보는 시선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공감은 책임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더 정확하게 이해하도록 돕는 능력입니다.


일상에서 만들어지는 작은 적들

전쟁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가족과 직장, 친구 관계에서 상대를 적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부부 갈등에서 상대를 “절대로 내 말을 듣지 않는 사람”으로 규정하고, 부모와 자녀는 서로를 “나를 통제하는 사람”과 “말을 듣지 않는 아이”로만 바라볼 수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다른 부서나 동료를 문제의 원인으로 여기고, 온라인에서는 의견이 다른 사람을 무지하거나 악의적인 존재로 단정하기도 합니다.

갈등이 깊어지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상대를 이기는 것이 더 중요해집니다.

  • 상대의 말을 끝까지 듣지 않습니다.
  • 중립적인 행동도 나쁜 의도로 해석합니다.
  • 상대가 사과해도 진심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 편의 잘못은 작게 보고 상대의 잘못은 크게 봅니다.
  • 상대가 손해를 보면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통쾌함을 느낍니다.

이때는 원래 해결하려던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다시 확인해야 합니다.

우리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일까요, 상대를 굴복시키려는 것일까요?


갈등 속에서 적대감을 낮추는 방법

1. 사람과 행동을 구분하기

“당신은 이기적인 사람이야”보다 구체적인 행동과 영향을 말합니다.

“내 의견을 묻지 않고 일정을 정했을 때 존중받지 못한 느낌이 들었어.”

사람 전체에 대한 공격을 줄이면 문제를 대화할 가능성이 커집니다.

2. 사실과 해석을 나누기

상대가 실제로 한 말과 내가 그 말에 붙인 의미를 구분합니다.

  • 사실: 상대가 내 메시지에 하루 동안 답하지 않았다.
  • 해석: 일부러 나를 무시했다.
  • 다른 가능성: 바쁘거나 답할 내용을 생각하고 있을 수 있다.

3. 상대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

다른 사람의 말이나 집단의 평가만으로 상대를 판단하지 마세요.

가능하고 안전한 상황이라면 당사자의 설명을 직접 들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4. 집단을 하나로 묶는 말을 줄이기

“그 사람들은 모두 그래”라는 표현 대신 구체적인 사람과 행동을 말하세요.

어떤 집단 안에도 다양한 생각과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5. 공통된 필요를 찾아보기

갈등하는 두 사람 모두 존중, 안전, 인정, 공정함을 원할 수 있습니다.

입장은 다르지만 그 아래의 필요에서 공통점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6. 확신이 너무 강할 때 질문하기

“내가 틀릴 가능성은 없을까?”

“상대의 행동을 설명할 다른 가능성은 없을까?”

“내가 상대의 입장이라면 무엇이 두려울까?”

확신을 잠시 내려놓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더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한 태도입니다.


공감한다고 모든 것을 용서해야 할까요?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과 잘못된 행동을 허용하는 것은 다릅니다.

상대에게 상처와 두려움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도 폭력과 모욕, 차별을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행동에 대한 책임을 요구하면서도 상대를 인간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당신이 왜 화가 났는지는 이해하지만 나에게 모욕적인 말을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어.”

“당신에게도 사정이 있다는 것은 알지만 그 행동으로 생긴 피해에 대한 책임은 필요해.”

공감은 경계를 없애는 일이 아닙니다.

건강한 갈등 해결에는 이해와 함께 분명한 경계, 책임, 안전이 필요합니다.


모든 갈등이 똑같은 책임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적』은 서로 비슷한 상황에 놓인 두 병사를 보여 줍니다. 그러나 현실의 모든 갈등이 이렇게 대칭적인 것은 아닙니다.

권력의 차이가 크거나 한쪽이 지속적으로 폭력과 통제를 행사하는 관계에서는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자”는 말이 피해자에게 또 다른 부담이 될 수 있습니다.

학대나 폭력, 괴롭힘을 겪는 사람에게 가해자의 마음부터 이해하라고 요구해서는 안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관계 회복보다 피해자의 안전과 보호가 먼저입니다. 필요한 경우 관계에서 거리를 두고 주변 사람이나 전문기관에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상대를 인간으로 본다는 것이 위험한 상황에 머물러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평화를 원한다는 것이 부당한 행동에 침묵해야 한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진정한 평화는 폭력을 덮는 상태가 아니라 안전과 존엄, 책임이 함께 회복되는 상태입니다.


아이와 함께 읽을 때 주의할 점

『적』은 전쟁과 죽음, 적대감을 다루는 작품이므로 아이의 연령과 정서 상태를 고려해 읽는 것이 좋습니다.

전쟁이나 폭력적인 경험이 있는 아이에게는 그림책의 장면이 불안과 두려움을 자극할 수 있습니다. 책을 읽다가 불편해하면 끝까지 읽도록 강요하지 말고 잠시 멈춰도 괜찮습니다.

전쟁을 단순한 게임이나 두 병사의 오해로만 설명하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실제 전쟁에는 권력과 정치, 역사적 책임, 민간인의 피해처럼 복잡한 현실이 존재합니다.

아이에게 “누가 나쁜 사람일까?”라는 정답을 요구하기보다 사람이 어떻게 상대를 적이라고 믿게 되는지, 전쟁을 멈추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함께 생각해 보세요.








『적』을 읽고 나누면 좋은 질문

  1. 두 병사는 왜 참호 속에 숨어 있었을까요?
  2. 병사는 적을 직접 만나 본 적이 있었나요?
  3. 병사는 적에 관한 정보를 어디에서 얻었나요?
  4. 전투 지침서에는 왜 적을 야수라고 표현했을까요?
  5. 병사는 왜 지침서의 내용을 믿었을까요?
  6. 적의 참호에서 무엇을 발견했나요?
  7. 두 병사의 다른 점과 같은 점은 무엇인가요?
  8. 상대방도 자신과 같은 두려움을 느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9. 사람을 ‘적’이라고 부르면 어떤 것이 보이지 않게 될까요?
  10. 의견이 다른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나요?
  11. 상대를 이해하는 것과 잘못을 허용하는 것은 어떻게 다를까요?
  12. 두 병사가 전쟁을 멈추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요?
  13. 전쟁을 시작하지 않은 병사들이 왜 계속 싸워야 했을까요?
  14. 평화를 위해 개인과 사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독서 후 종이를 반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병사가 상상한 적의 모습을, 다른 쪽에는 참호에서 발견한 실제 적의 모습을 표현해 볼 수 있습니다.

두 그림 사이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이야기하며 정보와 실제 경험, 고정관념과 인간의 모습을 비교해 보세요.


적대적인 언어를 바꾸는 연습

우리가 사용하는 말은 상대를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줍니다.

다음과 같이 사람을 규정하는 언어를 구체적인 행동과 감정의 언어로 바꾸어 볼 수 있습니다.

  • “그 사람은 이기적이야.”
    → “내 의견을 묻지 않고 결정해서 서운했어.”
  • “저 사람은 말이 안 통해.”
    → “서로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다른 것 같아.”
  • “쟤는 항상 문제를 일으켜.”
    → “오늘 약속을 지키지 않아 함께 일하기 어려웠어.”
  • “그 사람들은 다 똑같아.”
    → “내가 만난 몇 사람에게서 비슷한 경험을 했지만 모두를 알지는 못해.”

언어를 바꾼다고 갈등이 곧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상대를 공격하는 대신 실제 문제를 다룰 수 있는 공간이 생깁니다.


참호 밖으로 나오는 용기

『적』의 두 병사는 각자의 참호에서 상대를 두려워합니다.

그들은 같은 하늘 아래에서 추위와 배고픔을 견디고, 가족을 그리워하며, 전쟁이 끝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상대가 괴물이라는 믿음 때문에 서로의 닮은 모습을 발견하지 못합니다.

참호는 몸을 보호해 주는 공간이지만 동시에 상대를 볼 수 없게 만드는 공간입니다.

우리의 확신과 고정관념도 마음의 참호가 될 수 있습니다. 상처받지 않게 보호해 주지만 그 안에 오래 머물면 다른 진실을 볼 기회를 잃습니다.

참호 밖으로 나온다는 것은 자신을 무방비 상태로 내놓는 일이 아닙니다.

누군가가 제공한 설명을 그대로 믿지 않고 질문하는 것, 상대를 집단의 이름이 아닌 한 사람으로 바라보는 것, 안전한 범위에서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입니다.

평화는 상대의 잘못을 모른 척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상대 역시 두려움과 소망을 가진 인간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으면서 잘못에 책임을 묻고, 폭력을 반복하지 않을 방법을 찾는 데서 시작됩니다.

오늘 나의 마음속 참호 건너편에는 누가 있나요?

나는 그 사람을 실제 모습으로 보고 있나요, 아니면 두려움과 분노가 그려 놓은 이미지로 바라보고 있나요?

상대를 다시 인간으로 바라보는 순간, 당장 모든 갈등이 끝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대감이 당연하다고 믿었던 마음에는 작은 질문 하나가 생깁니다.

“정말 저 사람은 나와 전혀 다른 존재일까?”

어쩌면 그 질문이 오래된 싸움을 멈추게 하는 첫걸음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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