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책』으로 들여다보는 가족관계의 심리학

림책 심리학 시리즈

돼지책으로 들여다보는 가족관계의 심리학

왜 나만 해야 하지?” 당연함 뒤에 숨어 있는 마음


가족은 가장 가까운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족에게 가장 편안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고, 가장 많은 기대를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가장 가까운 관계에서 가장 서운한 마음이 생길 때가 있습니다.

왜 나만 신경 써야 하지?”

내가 하는 일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것 같아.”

가족들은 내가 해주는 것을 너무 당연하게 생각해.”

이런 마음을 한 번쯤 느껴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앤서니 브라운의 그림책 돼지책은 가족 안에서 누군가의 수고가 너무나 당연하게 여겨질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아주 강렬하고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는 그림책입니다.

아이들을 위한 그림책처럼 보이지만 어른이 읽으면 오히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돼지책을 통해 가족관계 속 역할과 희생, 인정받고 싶은 마음, 그리고 건강한 관계를 위해 필요한 것을 심리학의 관점에서 살펴보겠습니다.


1. 가까운 사이일수록 당연함이 생깁니다

가족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말 가운데 하나는 어쩌면 이것일지도 모릅니다.

원래 그런 거 아니야?”

엄마니까 당연히 밥을 해야 하고아빠니까 당연히 돈을 벌어야 하고부모니까 당연히 자녀를 도와야 하고자녀니까 당연히 부모의 기대를 따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서로를 위해 시작했던 일이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역할이 되어버립니다그리고 역할이 반복되면 고마움도 점점 사라집니다.

누군가 매일 아침 식사를 준비할 때 처음에는 고마워라고 말하지만, 그것이 몇 년 동안 반복되면 어느 순간 식사가 차려져 있는 것이 당연해집니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됩니다반복되는 사랑은 쉽게 보이지 않게 됩니다.


2. 돼지책속 엄마는 왜 떠났을까요?

돼지책에는 피곳 씨 부부와 두 아들이 등장합니다가족들은 엄마에게 많은 것을 의존합니다.

집안일은 자연스럽게 엄마의 몫이 되어 있고 가족들은 그것을 특별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엄마가 사라집니다그리고 집에는 이런 메시지가 남습니다.

너희들은 돼지야.”

엄마가 사라진 뒤 가족의 일상은 엉망이 되기 시작합니다그제야 가족들은 깨닫습니다.

자신들이 너무나 당연하게 누리고 있었던 일상이 사실은 누군가의 끊임없는 수고로 만들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중요한 질문을 하나 던질 수 있습니다.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힘들어진 것일까요아마 그렇지 않았을 것입니다서운함은 대부분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습니다작은 서운함이 반복되고말하지 못한 감정이 쌓이고,

자신의 수고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는 느낌이 오래 지속되면서 마음은 점점 지쳐갑니다.








3.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

사람에게는 누구나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대단한 칭찬을 받고 싶다는 의미만은 아닙니다.

고생했어.”

고마워.”

당신 덕분이야.”

오늘 힘들었지?”

이런 작은 말 한마디가 우리가 관계 안에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줍니다.


그런데 내가 하는 일을 다른 사람들이 계속 당연하게 생각한다면 어떤 마음이 들까요?

처음에는 서운합니다그다음에는 화가 날 수 있습니다그러다 시간이 지나면 포기하게 되기도 합니다.

말해봐야 뭐해.”

아무도 내 마음을 몰라.”

이런 마음이 반복되면 관계 안에서 정서적으로 멀어질 수 있습니다몸은 같은 공간에 있지만 마음은 점점 혼자가 되는 것입니다.


4. 분노 아래에는 다른 감정이 숨어 있습니다

가족상담에서 화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아래에 다른 감정이 숨어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왜 아무것도 안 해!” 라는 말 아래에는

나도 좀 도와줬으면 좋겠어.” 라는 마음이 있을 수 있습니다.


당신은 내 생각은 전혀 안 하지?” 라는 말 아래에는

나도 당신에게 중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라는 마음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됐어. 내가 다 할게.” 라는 말에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라는 서운함이 들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분노만 바라보면 상대방의 진짜 마음을 놓치기 쉽습니다화를 없애려고 하기 전에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화 아래에는 어떤 마음이 있을까?”

서운함일까요?

외로움일까요?

억울함일까요?

아니면 사랑받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일까요?


5. 가족 안에서도 경계가 필요합니다

가족이라고 해서 모든 것을 희생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가까운 관계일수록 오히려 건강한 경계가 필요합니다.

오늘은 내가 너무 힘들어서 쉬고 싶어.”

이 일은 함께 해주었으면 좋겠어.”

내가 이것까지 하는 것은 힘들어.”

이렇게 자신의 상태와 필요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경계를 세운다는 것은 가족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오히려 오랫동안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방법입니다한 사람이 계속 참고 희생하면서 유지되는 관계는 언젠가 균형이 무너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좋은 가족은 한 사람이 모든 것을 해주는 가족이 아니라 서로의 어려움을 알아차리고 역할을 나눌 수 있는 가족에 더 가깝습니다.


6. 사랑은 알아서 해주는 것일까요?

가족 사이에서 자주 발생하는 갈등 가운데 하나가 있습니다.

그걸 꼭 말해야 알아?”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내 마음을 알아서 알아주기를 기대합니다하지만 아무리 가까운 관계라도 상대방의 마음을 완벽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내가 힘들다는 것을 말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내가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그래서 건강한 관계에서는 참는 능력보다 표현하는 능력이 중요합니다.

당신은 왜 한 번도 도와주지 않아!” 라고 말하는 대신,

요즘 내가 많이 지쳐 있어. 오늘은 당신이 설거지를 해주면 좋겠어.” 라고 구체적으로 표현해볼 수 있습니다.

비난보다 자신의 감정과 필요를 말하는 것입니다.


7. 우리 가족의 보이지 않는 노동을 찾아보세요

돼지책을 읽은 후 가족과 함께 이런 활동을 해보아도 좋습니다종이에 가족 구성원의 이름을 적어봅니다그리고 그 사람이 가족을 위해 하고 있는 일을 적어봅니다.

아침을 준비하는 사람,

쓰레기를 버리는 사람,

가족의 일정을 챙기는 사람,

장을 보는 사람,

운전하는 사람,

아픈 가족을 돌보는 사람,

집안 분위기를 살피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눈에 보이는 집안일만 찾는 것이 아닙니다마음을 쓰는 일도 노동입니다.

오늘 아이 기분이 안 좋아 보이는데 무슨 일이 있나?”

부모님 병원 예약 날짜가 언제였지?”

가족 생일을 챙겨야겠다.”

이렇게 기억하고 걱정하고 챙기는 일 역시 많은 정서적 에너지를 필요로 합니다.

👌👌

활동을 마친 뒤 서로에게 한 문장씩 말해봅니다.

당신이 ______해줘서 고마워.”

아주 단순한 말이지만 가족관계에서는 이런 표현이 생각보다 큰 힘을 가집니다.








8. 내가 너무 많이 하고 있지는 않은가요?


돼지책을 읽으며 다른 가족의 행동만 돌아볼 필요는 없습니다.나 자신에게도 질문해볼 수 있습니다나는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을까?

항상 참고 있는 사람인가요?

모든 것을 해결해주는 사람인가요?

가족들의 감정을 계속 살피는 사람인가요?

싫어도 싫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인가요?

반대로 누군가의 돌봄을 너무 당연하게 받고 있지는 않은가요?

누군가가 해주고 있는 일을 오랫동안 잊고 살지는 않았나요?


이 질문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누가 잘못했는지를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족의 관계가 어느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는 것입니다.

가족에게도 고마워라는 말이 필요합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우리는 의외로 고맙다는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낯선 사람이 문을 잡아주면 감사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매일 나를 위해 밥을 차려주는 가족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가까우니까.가족이니까.늘 해왔으니까그러나 바로 그 당연함이 관계를 조금씩 지치게 할 수 있습니다.


돼지책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의 일상을 가능하게 해주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오늘 집에 돌아가 가족을 한번 바라보면 어떨까요?

그리고 아주 작은 것 하나라도 찾아 말해보세요.

오늘도 고마워.”

그동안 내가 너무 당연하게 생각했네.”

당신이 해주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이제야 알겠어.”


관계가 좋아지는 시작은 거창한 사건이 아닐지도 모릅니다.

당연했던 것을 다시 고맙게 바라보는 것.

가족이라는 이유로 보이지 않았던 한 사람의 수고를 발견하는 것.

그리고 나 역시 가족 안에서 무조건 희생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할 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는 것.


그것이 돼지책을 통해 우리가 다시 생각해볼 수 있는 가족관계의 모습입니다.

오늘 나의 가족에게 묻고 싶습니다.

우리는 서로의 수고를 얼마나 알아주며 살아가고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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